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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
머루

 

머루의 생태와 특징

머루를 생각하면 가요로 유명해진 고려가요 청산별곡이 떠오릅니다. 머루와 다래가 푸른 하늘과 단풍으로 붉어진 산과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청천 홍삼별곡'이라 할 만합니다.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도 머루나 다래를 맛볼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간혹 꽃이나 설익은 열매는 보아도, 잘 익어 먹기 좋은 열매는 쉽게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숲이 우거지면서 햇볕을 가리는 나무들로 인해 열매가 잘 익지 못하고, 머루와 다래를 실컷 맛보는 것은 많은 이들의 소망입니다. 머루는 포도과에 속하는 덩굴성 목본 식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일본과 중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머루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거나 제 풀에 말려가며 자라기 때문에 정확한 키를 알 수 없지만, 길이는 10m에 달합니다. 하트 모양의 잎에는 크고 작은 톱니가 거칠게 나 있으며, 잎과 마주보고 꽃이 달립니다. 꽃차례 아래에는 돼지꼬리처럼 돌돌 말린 덩굴손이 자랍니다. 꽃은 연두색과 노란색을 섞은 듯한 작은 꽃들이 달리며, 위에서 아래로 5갈래로 갈라져 독특한 형태를 이룹니다. 머루의 열매는 포도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더 작고 색깔이 진합니다. 검은색이면서도 보라와 푸른색이 감추어진 듯한 색깔이며, 표면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납니다. 맛은 새콤달콤하여 아이셔하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광고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이 나무를 머루라고 부르지만, 머루 외에도 왕머루, 까마귀머루, 세머루, 개머루가 있습니다. 개머루는 잎이 많이 갈라지고 열매 색깔이 다양하여 구별하기 쉽지만, 다른 종류들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머루의 종류와 분포

특히 머루와 왕머루는 매우 흡사하여 구별하기 어려운데, 잎 뒷면에 적갈색 털이 있는 것이 머루이고, 그렇지 않으면 왕머루입니다. 실제로는 왕머루가 더 많아 우리가 흔히 머루라고 부르는 것은 왕머루일 가능성이 큽니다. 세머루는 잎이 10cm 미만으로 작고 잎 가장자리의 결각도 적으며, 까마귀머루는 잎이 5갈래로 깊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열매는 새머루만이 열매에 청흑색이 돌 뿐, 거의 같은 색과 모양,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방에 따라 머루 형제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왕머루를 경상도에서는 '멀고넝쿨', 황해도에서는 '머리순'으로 부르며, 일본 사람들은 '조선포도'라고 부릅니다. 머루는 '산머루' 또는 '산포도'라고 불리며, 까마귀머루는 경상도에서 '모래나무', 경기도에서 '새멀고' 등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왕머루와 머루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머루라고 부르며, 머루가지로 음료를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머루와 포도는 사촌간이며, 우리가 잘 아는 담쟁이덩굴과도 같은 집안 식구입니다. 가을에 포도가 한물가면 간혹 국도를 지나가다 '머루포도 팝니다'라는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머루와 포도를 교잡하여 만든 잡종인 '머루포도'를 판다는 뜻입니다. 머루포도는 결실기가 늦어 포도가 끝물일 때 먹을 수 있으며, 머루보다 달고 포도에 가깝지만 껍질이 두꺼워 머루에 가깝습니다. 비타민이 많아 영양가가 높습니다. 머루 형제들의 학명인 바이티스는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비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포도주를 예수의 피로 상징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 미사 때 사용하는 포도주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머루는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친근함만큼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황제가 포도주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 이래로 포도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포도가 보편적인 과일로 재배되었으며,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재수로 포도를 사용했습니다.

 

머루의 이용과 전설

머루 열매는 과실로 먹거나 술을 빚어 먹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머루주를 담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잘 익은 머루 열매를 씻어 물기를 없앤 후 병에 담고, 머루의 양의 세 배쯤 되는 소주를 부어 3개월쯤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머루의 풍미가 스며들어 맛이 더욱 좋아집니다. 걸러낸 열매는 제거하고, 머루주는 물을 타거나 다른 과실주와 섞어 마시면 좋습니다. 기호에 따라 꿀을 약간 타 마시기도 합니다. 머루의 어린 순이나 잎도 먹을 수 있습니다. 소금을 넣은 물에 살짝 데친 후 적당한 크기로 썰어 깨와 간장 혹은 꿀과 함께 무쳐도 좋고, 겨자로 묻히고 간장으로 간을 하여 먹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어린 잎에 반죽을 묻혀 튀김으로 해 먹기도 합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머루는 구체적인 효능보다는 술로 이용하는 내용이 주로 나옵니다. 그러나 잎이나 줄기는 여름이 지난 후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하며, 뿌리는 가을 이후에 채취하여 물로 깨끗이 씻은 후 건조하여 사용합니다. 머루는 각기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린 뿌리를 물에 넣고 다려 하루에 세 번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사마귀나 티눈 치료에도 사용되며, 말린 잎을 비벼 환부에 붙여 쑥 대신 뜸을 뜨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머루의 맛과 영양, 효능이 알려지면서 고급 와인과 머루즙도 상품으로 나와 있습니다. 머루는 식용과 약용 외에도 줄기로 지팡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머루와 더 친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해도의 원주민 아이노족에게는 머루와 천남성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천남성은 무릎 높이쯤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 머루가 익을 때쯤 붉은 방망이처럼 열리는 열매가 매우 화려합니다. 그러나 이 열매에는 독이 있어 함부로 먹으면 위험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머루와 천남성은 숲속에서 세력 다툼을 벌였는데, 머루가 승리하여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천남성은 기가 죽어 땅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천남성의 땅속 줄기에는 머루에게 베인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아이노족들은 천남성 열매를 구충제로 먹고, 이를 해독하기 위해 시큼한 머루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므로, 독성이 있는 천남성 열매를 함부로 먹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